나도 광우병을 말할 수 있다

06 December 2008 4 Comments Category: 밑줄긋기


* 2008년 12월 2주 알라딘 우수 TTB 리뷰로 선정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광우병(BSE: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mad cow disease) 이야기가 나와도 신문에 실린 먼나라 일 정도로 생각했던 우리들입니다. 어느 오지의 풍토병처럼, 혹은 수만리 떨어져 전파되기도 어려운 병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간혹 뉴스에 광우병 기사가 나와도 한귀로 듣고 흘려버린다 한들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광우병은 남의 얘기에 불과했습니다.

작년 임상수업 블럭강의를 하면서 신경과를 배울 때 아주 짧막하게 인간광우병이 나왔고, 그 전에 기초과목을 배울 때 생화학 시간에 프라이온(prion)에 대해서 공부를 했지만 ‘흥미롭긴 한데 우리나라에 있지도 않은 병인데 뭐..’라는 생각을 먼저 할 정도로 별 비중이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시험에는 단골문제였지만요.

미국과 쇠고기에 관한 무역 협정이 대두되면서 남의 이야기였던 광우병은 우리 사회에서 제 1의 논의거리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손손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개중에는 광우병의 위험성이 과장되었다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광우병의 공포를 잠재우기는 커녕 뭇매를 맞기 쉽상이었습니다. 

광우병은 몇 개월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고 그 위험성도 여전하며 아직 치료를 할 방법도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요. 어느새 촛불은 잠잠해졌고 미국 쇠고기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판매량이 돌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가격만 놓고 본다면 MT나 회식의 단골메뉴인 삼겹살이 LA 갈비로 대체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몇달이나 되었다고 관심이 벌써 싸늘해졌냐고 탄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흥분된 감정을 조금 가라앉힌 지금이 어쩌면 광우병의 허와실, 광우병의 위험에 대한 막연한 믿음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광우병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 좋을까요. 웹검색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겠지만 자료의 신빙성을 보장받기가 어렵겠고, 관련 논문을 읽자니 너무나 전문적인 분야라 이해하기 어렵겠고, 브릭(BRIC) 게시판의 글을 읽어보지만 체계적인 개념이 서질 않고, 도서관의 책을 찾아보자니 너무 방해한 것 같고.. 주위에 묻자니 피상적인 답변 뿐이고. 광우병 이야기는 많지만 광우병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자료는 흔치 않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이러한 때에 반갑게도 현직 의사가 최신 연구 성과들을 검토해서 펴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브릭에서 ‘피카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분이 그동안 게시판에서 나누었던 열띤 토론을 바탕으로 최신 연구 결과 200여건을 정리하여 ‘과학’으로 ‘광우병의 실체’를 흥미진진하게 파헤친 책입니다.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위드블로그에서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유수민, 지안출판사)’의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학서일까, 일반 교양서일까?’ 였습니다. 다음주부터 실습을 시작하는 신경과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흥미를 불러일으킬 거리가 되겠다는 기대가 작용을 하는 한편 아무래도 최근에 사회적인 이슈가 있었던 만큼 ‘시류에 편승해서 대충 써낸 책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촛불이 다 꺼지고 나온 것을 보면 단순히 이슈를 끌기보다는 제대로 된 책을 내놓으려는 마음이 더 크지 않았을까요.

책 신청을 하고 수령을 했지만 주중에는 실습 때문에 읽지 못하다가, 주말인 오늘 책을 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권을 다 읽고 말았습니다. 300여 페이지나 되는 적지 않은 양임에도 불구하고 쉼없이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과학서라 하면 과학 교과서를 읽는 것 만큼이나 따분하고 지루합니다. 관련 분야에 엄청 흥미가 있거나 공부를 해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책을 단숨에 읽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과학서를 나름 좋아하는 저도 한 자리에서 다 읽은 적은 별로 없을 정도니까요.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는 분명 과학서입니다. 광우병의 역사 정도야 가볍게 읽는다 하더라도 광우병의 원인, 박테리아, 바이러스, 프라이온, 스크래피, SRM, M/M 형 등등 자주 들었지만 여전히 생소한 용어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재미없는’ 과학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자인 유수민님은 이 부분을 염두에 두신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용을 흥미롭게 전개해 나갑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우리말을 잘 하는 과학자가 있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책을 쓰셨네요. 광우병을 논하기에 앞서 파푸아 뉴기니아의 식인종인 포어족 사이에 발병한 쿠루병(Kuru)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영국에서 처음 발견된 광우병과 포어족의 쿠루병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우리의 뇌에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그러고보니 미국 쇠고기 때문에 광우병이 초점을 받았는데 영국에서 시작된 병이라는 것은 또 무슨 이야기일까요.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나요.

이런 궁금증에 대해 전문 의학 지식이 없더라도 누구나 쉽게 답을 구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가 주저앉는 것을 발견하기 이전 양이 미쳐 날뛰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양들에서 발견된 스크래피와 포어족의 쿠루병, 그리고 광우병 이 모든 것이 추리소설의 한 장 처럼 흥미진진하게 유기적으로 설명이 되어집니다. 광우병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이 펼쳐지고, 실제 광우병에 걸려 생을 달리한 희생자들의 일화가 이어지면서 호기심은 배가 됩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흥미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밝혔듯이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는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제대로 된 교양 과학서입니다. 중반부에서는 보다 전문적인 내용들로 무장이 됩니다. 전문적인 것들은 따분하다면 굳이 읽지 않고 넘어가도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광우병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문적’이라고 하니까 과학책 같은 내용을 떠올리는 분도 계실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함이라기 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배경지식을 소개하는 셈이라고 할까요.

이렇게 흥미와 지식을 동시에 전달하는 책이어서 그런지 이번 주말 저녁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광우병이 뭐길래 이렇게 말이 많은지, 30개월로 나누던데 그 30개월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답해 주지 못했던 궁금증 해결 뿐만 아니라 친구에게 혹은 가족에게 광우병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잠깐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아니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라도 가까운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아 한번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관련글 게시판
- 브릭: 광우병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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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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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시 같이 위드블로그를 통해 읽고 독후감을 올리신 분이었군요.
    반갑습니다.
    처음 뵌 것 같지만, 앞으로는 자주 뵐 수 있겠지요?
    저도 올린 글 엮어놓겠습니다.

    초하 8 December 2008 at 4:20 am Permalink
    • 글 올리고 다른 분들 리뷰를 읽으면서 초하님 블로그도 방문했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LUV™ 10 December 2008 at 7:40 pm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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